성인이 된 내 아들아, 이제 엄만 엄마 인생 좀 살련다

빨간 배경 앞에서 손가락질하며 잔소리하는 엄마와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성인 아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는 자기를 잠깐 접어둡니다.

“잠깐만요” 하고 접어뒀는데, 그 잠깐이 2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접어둔 자리에 먼지가 앉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보면, 코 흘리던 그 애가 나보다 키 크고, 나보다 영어 잘하고, 나보다 세상 물정 밝은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조금 억울합니다.

아무튼 이제, 접어뒀던 나를 슬슬 펼 시간입니다.

1. 20년째 손 잡고 계신가요

넘어질까 봐 평생 붙잡아온 손이 있습니다.

그런데 20년 넘게 붙잡고 있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악력 운동입니다.

다 큰 자식한테 진짜 필요한 건,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 볼 기회예요. 그런데 우리는 애가 넘어지기 3미터 전부터 매트를 깝니다. 헬멧도 씌웁니다. 가는 길에 돌 있다고 문자도 보냅니다.

그러니 애도 못 크고, 나도 나로 못 돌아옵니다.

손을 놓는 건 사랑을 거두는 게 아닙니다. 어른 대접을 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붙잡는 게 습관이 돼서, 이제는 놓으면 제 손이 허전합니다. 애는 진작에 갈 준비가 됐는데 제가 못 놓고 있었던 겁니다.

애 걱정을 한 게 아니라, 제 손이 심심했던 거예요.

그리고 말이죠. 우리 아이들, 생각보다 우리 인생에 그다지 관심 없습니다.

2. “밥은 먹었니”를 이제 그만둘 때

우리는 걱정을 사랑이라고 우깁니다.

그런데 지나친 걱정은 “나는 너를 못 믿어”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밥은 먹었니.” — 서른 살입니다. 배고프면 알아서 먹습니다.
“옷은 따뜻하게 입었니.” — 추우면 알아서 껴입습니다.
“그 사람은 믿을 만하니.” — 이건 사실 제가 제일 궁금한 겁니다.

카톡 옆에 1이 안 사라지면, 우리 머릿속에서는 이미 상황이 응급실까지 갑니다. 사고가 났나. 폰을 잃어버렸나. 나한테 화가 났나.

세 시간 뒤 답장이 옵니다. “ㅇㅇ”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소설을 한 편 썼는데, 저쪽은 자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 아이는 자기 인생을 꾸릴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믿어주는 것, 그게 제일 성숙한 어른의 모습 아닐까요.

물론 저도 압니다. 알면서도 손이 먼저 나갑니다.

3. 죄책감은 이상하게 부지런합니다

“내가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엄마들은 다 이 죄책감 하나쯤 안고 삽니다.

그런데 이 죄책감이라는 게 참 성실합니다. 낮에는 조용하다가 새벽 두 시에 정확히 출근합니다. 야근수당도 안 받고 일합니다.

그때 더 놀아줄걸. 그때 화내지 말걸. 그때 그 학원 보낼걸. 아니, 보내지 말걸.

12년 전 일도 어제 일처럼 꺼내옵니다. 기억력 하나는 대단합니다.

그런데 완벽한 엄마는 세상에 없습니다. 부족한 채로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죄책감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정작 지금의 나를 위한 자리가 안 생깁니다. 마음의 방 한 칸을 20년째 차지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계약서도 없습니다.

이제 방 빼라고 하셔도 됩니다.

이미 잘 키웠습니다. 훈장은 내려놓고 좀 쉬세요.

4. 너나 잘하세요, Mom!

며칠 전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사흘을 준비했습니다. 문장도 다듬고, 목소리 톤도 정하고, 중간에 울면 어쩌나 걱정도 했습니다. 티슈도 옆에 뒀습니다.

엄마 — “아들아, 엄마가 너를 덜 사랑해서 손을 놓는 게 아니란다. 너를 믿어서, 그리고 엄마한테도 남은 인생이 있어서다. 이제 엄마는 엄마 이야기 좀 쓰련다.”

아들 — “Cool! Love you.”

끝입니다.

3초 걸렸습니다.

저는 눈물 젖은 이별 장면을 준비했는데, 상대는 이미 다음 화로 넘어가 있었습니다. 티슈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결국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쳤나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좀 웃겼어요.

붙잡고 있던 게 아이의 손이 아니라 제 마음이었다는 걸, 그 두 단어가 알려줬으니까요.

애는 진작에 준비돼 있었습니다. 준비 안 된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식이 다 컸다는 건 내 역할이 끝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할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관리자에서 응원단으로. 감독에서 관객으로.

관객석 좋습니다. 앉아서 봐도 되고, 팝콘도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두 손이 자유롭습니다.

20년 만에 빈손입니다.

빈손으로 있으려니 이것도 어색합니다. 뭐라도 들어야겠어요.

미뤄둔 공부여도 좋고, 안 가본 도시여도 좋고, 20년 전에 접어둔 그것이어도 좋습니다.

오늘 딱 하나만 정해보세요.

아이 걱정 말고, 내 걱정을 하나 만들어보는 겁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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