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뺄수록 멋있어집니다 — 30년차 디자이너가 보는 중년의 스타일

단정하고 편안한 중년 여성의 옷차림 - 힘을 뺀 스타일링

옷을 볼 때 제가 제일 먼저 보는 건 디자인이 아닙니다.

질감부터 봅니다.

손으로 한번 만져보고, 색을 봅니다.

같은 베이지라도 다 같은 베이지가 아니거든요. 노란빛이 조금 더 도는지, 회색이 섞였는지, 탁한지 맑은지. 옷만 놓고 보면 별 차이 없어 보여도 얼굴 가까이에 대보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다음엔 봉제선이나 마감을 봅니다.

아마 직업병일 겁니다.

저는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해 제 의류 사업을 하기까지 30년 동안 옷을 만들고 팔며 살았습니다. 유행도 많이 봤고, 좋은 옷도 많이 봤고, 솔직히 별로인 옷도 정말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오래 옷을 보다 보니 오히려 결론은 단순해졌습니다.

힘이 들어간 옷은 멀리서도 보이고, 좋은 옷은 조용합니다.

오늘은 좋은 옷 고르는 법을 가르치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30년 동안 옷을 봐온 제 눈에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 대체로 이렇더라는 이야기입니다.

1. 옷이 사람보다 먼저 보이면, 옷이 이긴 겁니다

길을 걷다가 사람을 볼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저 사람은 안 보이네."

사람은 분명 앞에 있는데 옷만 보입니다.

큰 로고가 있고, 강한 패턴이 있고, 반짝이는 장식이 있고, 거기에 가방과 액세서리까지 다 자기주장을 합니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나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비싼 옷일 수도 있고, 요즘 유행하는 아이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같이 있으니 정작 사람이 사라집니다.

옷에 묻혀버린 겁니다.

제가 말하는 '힘이 들어간 옷'은 이런 겁니다.

옷을 못 입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옷이 사람을 이겨버렸다는 뜻입니다.

저는 옷은 조금 져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먼저 보이고, 옷은 그다음에 보여야 합니다.

정말 멋있어 보이는 사람을 떠올려보면 의외로 그 사람이 정확히 뭘 입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분위기는 기억납니다.

"참 세련됐다."
"편안해 보이는데 멋있다."
"저 사람한테 잘 어울린다."

옷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 사람 전체가 기억나는 겁니다.

옷에도 조화가 필요합니다.

좋은 재킷에 좋은 바지, 좋은 가방, 좋은 신발을 신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스타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서로 싸웁니다.

시상식 사진이나 공항 사진을 보다 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잖아요. 옷은 분명 비싸고 좋은데 이상하게 사람과 따로 노는 경우.

그럴 때 조금 안타깝습니다.

좋은 옷과 나한테 좋은 옷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2. 좋은 옷은 티 안 나는 곳에 돈을 씁니다

옷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재미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옷의 원가는 크게 두 군데로 갈 수 있습니다.

보이는 곳에 쓰느냐, 보이지 않는 곳에 쓰느냐.

보이는 곳에 쓰면 소비자도 바로 압니다.

장식이 많아지고, 로고가 커지고, 표면이 화려해지고, 매장에 걸어놨을 때 눈에 확 들어옵니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 돈을 쓰면 겉으로는 티가 별로 안 납니다.

대신 입으면 압니다.

원단이 몸에 닿는 느낌이 다르고, 색이 묘하게 고급스럽고, 움직였을 때 옷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여러 번 입고 세탁해도 모양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옷을 볼 때 중요하게 보는 것도 그런 부분입니다.

  • 질감 — 사진으로는 잘 안 보입니다. 직접 만져봐야 압니다.
  • 색감 — 같은 베이지, 같은 네이비라도 얼굴에 가져갔을 때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 봉제선 — 선이 반듯한지, 옷이 이상하게 틀어져 있지는 않은지 봅니다.
  • 안쪽 마감 — 겉은 멀쩡해도 안쪽을 보면 옷을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꽤 많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여기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비싼 옷과 잘 만든 옷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브랜드의 옷을 보다가도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 가격에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원단도 괜찮고, 기능도 좋고, 봉제도 깔끔하고, 입었을 때 모양도 좋습니다.

반대로 꽤 비싼 옷인데 자세히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이 옷의 품질을 언제나 보장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패션업계에는 브랜드가 라이선스를 주고 실제 생산은 다른 업체에서 대량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보는 이름과 로고는 그대로지만, 누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했느냐는 제품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라벨보다 옷 자체를 보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장에서 옷을 뒤집어봅니다. 옆에서 보면 좀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게 제일 정직한 정보거든요.

다음에 옷을 사러 가면 겉만 보지 말고 안쪽을 한번 보세요.

봉제선도 보고, 마감도 한번 만져보세요.

전문지식이 없어도 됩니다.

몇 번 보다 보면 이상하게 눈이 생깁니다.

'아, 이건 괜찮다.'
'이건 겉만 예쁘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3. 색을 줄이는 게 아니라, 톤을 모으는 겁니다

심플한 스타일 이야기를 하면 꼭 나오는 조언이 있습니다.

"색을 줄이세요."

그런데 저는 이걸 못 했습니다.

오랫동안 옷을 만드는 일을 했으니 옷도 많았고 색도 많았습니다. 갑자기 베이지, 흰색, 검정 몇 가지만 남기려고 하니 결국 멀쩡한 옷을 다 버려야 하더라고요.

그건 싫었습니다.

그래서 줄이는 대신 모았습니다.

검정은 검정끼리, 베이지는 베이지끼리, 흰색은 흰색끼리.

그리고 그 안에서 바지, 셔츠, 니트처럼 종류를 다시 나눴습니다.

신기한 건 옷은 별로 줄지 않았는데 아침이 훨씬 편해졌다는 겁니다.

옷장 정리에 관한 이야기는 「40~60대를 위한 심플 옷장 정리법」에 조금 더 자세히 적어두었습니다.

스타일도 비슷합니다.

꼭 색을 몇 개만 입어야 세련돼 보이는 게 아닙니다.

톤이 서로 어울리면 됩니다.

톤이 모이면 옷끼리 싸우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바지에는 뭘 입지?' '이 색이랑 저 색이 맞나?' 하고 매번 고민할 필요가 줄어듭니다.

지금 제가 입는 옷들은 예전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서로 섞어 입기 쉽고, 가볍고, 편한 옷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게 처음부터 '세련돼 보이고 싶어서' 만든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귀찮아서 그렇게 된 겁니다.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서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고, 아무거나 꺼내 입어도 웬만하면 어울렸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톤을 모았고, 불편한 옷을 줄였고, 서로 잘 섞이는 것들을 남겼습니다.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더 단정해 보이더라고요.

순서가 반대였던 겁니다.

예뻐지려고 단순해진 게 아니라, 편해지려고 단순해졌는데 오히려 더 나아 보였습니다.

저는 중년의 스타일은 이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애써 꾸민 느낌보다, 자기 생활에 맞게 정리가 된 느낌.

그게 훨씬 멋있습니다.

4. 몸을 옷에 맞추지 마세요

40대, 50대를 지나면서 몸은 조금씩 변합니다.

예전에 잘 맞던 바지가 불편해지기도 하고, 같은 사이즈를 집었는데 이상하게 핏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주 쉽게 말합니다.

"내가 살이 쪘네."
"몸이 변해서 이제 안 어울리네."

그런데 저는 반대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몸이 옷을 못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옷이 지금의 내 몸을 못 따라오는 겁니다.

기성복은 일정한 표준 치수를 가지고 만듭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 몸은 그렇게 표준적으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같은 허리 사이즈여도 골반이 다르고, 어깨가 다르고, 팔 길이가 다르고, 배가 나오는 위치도 모두 다릅니다.

그러니 어떤 옷이 나한테 안 맞는다고 해서 내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그 옷의 패턴과 내 몸이 안 맞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저는 핏을 보는 기준도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는 '날씬해 보이나?'를 먼저 봤다면, 지금은 '이걸 입고 하루 종일 편할까?'를 먼저 보는 게 좋습니다.

허리가 계속 신경 쓰이는 바지.
목이 답답한 셔츠.
팔을 올릴 때마다 끌려 올라가는 재킷.
서 있을 때는 예쁜데 앉으면 불편한 원피스.

이런 옷들은 아무리 예뻐도 결국 손이 안 갑니다.

옷장에 몇 년째 걸려 있는 '예쁜데 안 입는 옷'들이 대부분 그런 옷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옷을 아주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입고 나서 자꾸 옷이 생각나면 불편한 옷입니다.
입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면 좋은 옷입니다.

편하다는 건 대충 입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몸의 변화를 인정하고 그 몸이 하루를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스타일입니다.

편한 옷과 대충 입는 옷의 차이에 대해서는 「편한 옷이 대세인 시대, 진짜 스타일은 태도에서 나온다」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5. 다 하려고 하니까 힘이 들어갑니다

30년 동안 패션 일을 하면서 유행이 돌고 도는 걸 정말 많이 봤습니다.

한때 촌스럽다고 버렸던 게 몇 년 지나면 다시 돌아옵니다.

"저걸 누가 다시 입어?" 했던 게 어느 날 잡지와 매장을 가득 채웁니다.

대략 한 세대를 돌고 나면 다시 옵니다.

그걸 몇 번 겪고 나니 유행을 보는 제 마음도 많이 편해졌습니다.

유행은 생각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 내 생활과 어울리느냐입니다.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과 걸어 다니는 사람의 옷이 같을 수 없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과 집에서 일하는 사람의 옷장이 같을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멋있는 스타일이라도 내 하루와 맞지 않으면 결국 옷장에 걸려 있게 됩니다.

그리고 스타일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순간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유행하는 것도 하나 넣고 싶고,
좋아하는 색도 넣고 싶고,
비싸게 산 가방도 들고 싶고,
예전에 산 스카프도 아까워서 하고 싶고,
거기에 귀걸이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 하려고 하니까 힘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만 정하는 편을 좋아합니다.

오늘 스카프가 눈에 띄면 스카프 하나.
귀걸이가 포인트면 귀걸이 하나.
컬러가 강한 재킷을 입었다면 그게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나머지는 조금 조용하게 둡니다.

이렇게 입으면 훨씬 편안해 보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게 제일 좋습니다. 아침에 고를 게 줄어듭니다.

중년이 되면서 저는 이런 게 점점 더 중요해졌습니다.

옷 하나 입는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입고 싶다는 것도 아닙니다.

적게 고민하고도 내 모습이 괜찮은 것.

저에게는 그게 지금의 스타일입니다.

마무리 — 힘 빼기는 포기가 아닙니다

'힘을 뺀다'고 하면 대충 한다는 뜻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옷을 만들면서 제가 알게 된 건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힘 빼기는 아무거나 하는 게 아니라, 뭘 뺄 줄 아는 겁니다.

뭘 더할지 결정하는 건 의외로 쉽습니다.

하나 더 사면 되고, 하나 더 걸치면 되고, 하나 더 하면 됩니다.

그런데 뭘 빼야 하는지 아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을 제대로 뺀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자기한테 뭐가 필요한지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이건 옷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저도 작년에 오래 해오던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계속 뭔가를 더 하려고 했습니다. 더 버티고, 더 만들어보고, 다른 방법도 찾아보고.

그런데 오히려 무엇을 더 할지를 고민할 때보다 무엇을 이제 그만할지를 결정하고 나서 머릿속이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끝내는 데도 순서가 있었습니다」에 적어두었습니다.

옷장이든 일이든 관계든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다 가지고 가려고 하면 힘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힘이 너무 들어가면 티가 납니다.

멀리서도요.

그래서 지금 제 눈에는 이렇게 보입니다.

옷이 사람보다 먼저 보이면 옷이 이긴 겁니다.
비싼 옷보다 잘 만든 옷을 보는 눈이 더 중요하고,
색을 무조건 줄이는 것보다 서로 잘 어울리는 톤을 모으는 게 현실적이고,
핏은 날씬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이 하루 종일 편하기 위해 맞추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포인트는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런 걸 아는 데 특별한 패션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저도 30년이나 걸려서 겨우 이만큼 알았습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옷장 앞에서 너무 애쓰지 마세요.

뭔가 하나 더하려고 했다면,
오히려 하나만 빼보세요.

생각보다 꽤 달라 보일 겁니다.

함께 이야기해요

여러분은 옷을 고를 때 제일 먼저 뭘 보시나요?

색인가요? 가격인가요? 브랜드인가요?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그냥 '느낌'인가요?

그리고 옷장 안에 "분명 예쁜데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옷" 하나쯤 있지 않으세요?

왜 그 옷을 안 입게 되는지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쩌면 스타일에 대한 답이 새 옷을 사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옷장 안에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댓글로 편하게 이야기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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