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산책을 조르는데 저는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 오십에 온 우울증

창가 소파 옆에서 목줄을 물고 산책을 기다리는 반려견

늦은 오후였습니다.

소파에 잠깐 누워 있었어요. 산책 시간이 됐고, 강아지가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하던 일입니다. 목줄만 채우면 되는 일이고요.

그런데 못 일어났습니다.

일어나기 싫었던 게 아닙니다. 몸이 안 움직였습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소파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기다시피 해서 폰을 집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니퍼? 난데. 너 예전에 말했던 그 상담 테라피스트 연락처 좀 줄래?"

이상하게, 그 말을 꺼내자마자 몸이 조금 풀렸습니다. 그리고 용기가 났어요.

그날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건강하지 않다는 걸 인정한 날이요.

그렇게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1. 저는 우울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가라앉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몇 년이 이랬습니다.

아들이 커서 자기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래 하던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대형 체인과 백화점을 상대로 대량생산을 하던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걸 계속 못 하겠다 싶은 날이 왔거든요.

그만두고 끝낸 게 아니라 방향을 틀었습니다. 친환경 소재로, 온라인과 쇼를 중심으로 파는 미니멀 컨셉의 브랜드를 준비했습니다. 규모는 훨씬 작아졌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고 집도 정리했습니다. 일하는 곳 가까운 작은 아파트로 옮겼고요.

그리고 이사하자마자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쇼에 한 번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유가 충분하잖아요.

외로움. 긴장. 공포.

전부 설명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상황이라고 불렀습니다. 병이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상황은 지나가는 거니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정보가 넘칩니다. 우울증이 뭔지 다들 압니다. 저도 알았어요.

그런데 아는 것과, 그게 내 얘기라고 받아들이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더군요.

설명이 되면 오히려 더 안 갑니다. 왜냐하면 납득이 되니까요. 이만하면 우울할 만하지,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2. 우울증은 슬픔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슬프다는 느낌도 딱히 없었어요. 대신 이런 것들이 왔습니다.

의지력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그때 제가 스스로를 뭐라고 생각했냐면, 시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는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상태요. 해야 할 일이 뭔지는 아는데 몸이 그쪽으로 안 갑니다.

음식 맛이 안 났습니다

먹기는 먹었습니다. 굶지 않았어요. 그런데 맛이 안 느껴졌습니다. 뭘 먹어도 그냥 입에 넣는 일이 됐습니다.

뉴스를 틀면 세상이 망하는 것 같았습니다

팬데믹 때였으니 실제로 뉴스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보고 나면 끄고 일상으로 돌아오잖아요. 저는 그게 안 됐습니다. 그대로 제 안에 들어와서 남았습니다.

그러다 그날이 온 겁니다. 소파에서 못 일어난 날이요.

혹시 지금 "나는 슬프지 않으니까 우울증은 아니겠지" 하고 계신다면, 그건 제가 몇 달 동안 했던 생각입니다.

3. 상담을 받다가 다른 걸 발견했습니다

상담을 시작했고, 정신과 진료도 함께 받았습니다.

바로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회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게 나왔습니다.

제가 ADHD였습니다.

우울해서 산만해진 게 아니라, 평생 그랬던 거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어릴 적 전 늘 촐랑이였습니다에 따로 썼습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건 한두 번 만나서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계속 상담을 받았기 때문에 전문가 눈에 보인 겁니다.

그러니 한 번 가보고 별것 없더라 하고 그만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처음 몇 번은 그냥 제 상황 설명만 하다 나왔거든요.

4. 제일 먼저 필요한 건 방법이 아니라 인지였습니다

회복하면서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순서가 있더라고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앞에 먹구름이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전에는 그 먹구름을 밀어내려고 했습니다. 아니야, 오늘은 괜찮을 거야. 이렇게요.

그러면 더 힘들었습니다. 먹구름이랑 싸우느라 오전이 다 갔거든요. 그리고 대개 졌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합니다.

"아, 오늘 그분이 오시는구나."

그리고 그냥 받습니다. 유유히요.

이상하게 그러면 좀 낫습니다. 없애려고 하지 않으니까 힘이 덜 듭니다. 그리고 안 없애도 어차피 지나가더라고요.

인정이 첫걸음이라는 말을 많이 하죠. 저는 그게 무슨 대단한 결심 같은 건 줄 알았습니다. 해보니 아침에 혼잣말 한마디 하는 정도였습니다.

5. 그다음은 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단순합니다.

매일 아침저녁 강아지 산책. 불편해도 나갑니다.

꾸준한 운동.

그리고 하루의 뼈대가 되는 루틴. 저는 이걸 코어 루틴이라고 부릅니다. 몇 시에 일어나서 뭘 하는지가 정해져 있으면 그날이 덜 흔들립니다.

(제가 하루를 어떻게 짜는지는 마음이 산만한 사람을 위한 하루 계획법에 적어뒀습니다.)

이걸 계속하면 우울증이 서서히 멀어집니다.

여기서 제일 하고 싶은 말이 이겁니다.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물론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두 문장은 다릅니다. 방법이 복잡하지 않다는 것과, 그걸 하는 게 쉽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예요.

우울한 사람한테 매일 밖에 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저도 압니다. 저는 소파에서 못 일어나던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강아지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제 의지로는 못 나갔을 날에도 강아지는 나가야 했거든요. 그날은 제가 못 일어났지만, 그 뒤로 저를 매일 밖으로 끌어낸 게 그 녀석입니다.

ADHD도 같은 방식으로 다룹니다. 없애려 하지 않고, 장점과 단점을 알고, 제 성향에 맞게 생활을 짭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일할 때도, 혼자 있을 때도요.

6. 주변에 알리라는 말,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전문가 채널을 보면 대개 주변에 알리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에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괜찮을 때 나를 편하게 여깁니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원래 그런 겁니다. 저도 남한테 그러니까요.

가족에게 어두운 걸 나누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자식한테는요. 걱정시키기 싫어서 안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은 전문가를 만나는 것도 사실은 운입니다. 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충분히 들어주고 살펴주는 사람을 늘 만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운이 좋았던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이겁니다.

제 상태를 제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뭐라도 한 것.

누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이요.

아들과 친구들에게는 한참 지나서 말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캐주얼하게요. "아 나 그때 좀 힘들었어" 정도로요. 이미 지나간 뒤였으니까 편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저는 그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바닥을 기어서 폰을 잡은 이유가 그거였어요.

그러니까 저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모두에게 알리는 것과, 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앞의 것은 안 하셔도 됩니다. 뒤의 것은 하셔야 합니다.

저도 그거 하나로 시작됐거든요.

마무리

지금은 어떠냐면요.

그분이 가끔 옵니다. 아주 안 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압니다. 아침에 먹구름이 보이면 아 오늘이구나 하고, 산책 나가고, 운동하고, 하던 걸 합니다. 그러면 지나갑니다.

없어진 게 아니라 다룰 줄 알게 된 겁니다. 이 둘은 다르고, 저는 후자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년 말로 그 브랜드도 정리를 끝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 달라스로 왔고요.

그리고 강아지는 여전히 산책을 조릅니다.

이제는 일어납니다.


혹시 지금 힘드시다면

이 글은 제 경험이지 진단이나 치료법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저한테 통한 게 다른 분께 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만 이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혼자 버티지 않으셔도 됩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 24시간 상담이 가능합니다
  •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 24시간 정신건강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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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에도 정신건강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이 운영 중입니다. 나이와 소득 기준 없이 전문 심리상담 8회(회당 50분)를 지원받을 수 있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나 복지로 홈페이지에서 신청합니다. 다만 의뢰서나 진단서 같은 증빙서류가 필요하니 미리 129에 문의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해외에 계신 분은 현지 상담 기관을 찾아보세요. 저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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